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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석재(石齋) 조연현은 용서받지 못할 친일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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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8-0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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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石齋) 조연현은 용서받지 못할 친일파인가?

 

일제에 저항 하다 학창시절 3번의 퇴학과 면서기 때 살아남기 위해 쓴 4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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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문인협회 회장 조평래

 

1981년 석재 조연현이 작고하자, 1982년 한국문인협회에서 조연현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연현문학상을 만든 후 2020년까지 매년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에게 39회에 걸쳐 상을 수여해 왔다.

 

현재 대한민국 문인들의 수장으로 한국문인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광복 이사장도 1995년 제14회 소설 <먼길>로 조연현문학상을 수상하여 전국적으로 더 유명해졌다.

 

서울에도 여러 단체들이 있는데 친일 논쟁으로 수상식에 잡음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서울에는 깨어있는 사람이 없고 역사의식이 없는 바보들만 사는 도시라서 그럴까?

 

조연현은 도대체 얼마나 극악무도한 일제 앞잡이였기에 그가 사랑했던 고향 함안에서는 그의 이름조차 함부로 언급 못하고 산책길에 손바닥만한 시판 하나를 설치하자 뽑아내라고 저 난리를 친단 말인가?

 

이제 공론화된 장에서 냉철하게 한 번 살펴보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조연현은 1920년 함안면 봉성에서 태어나 함안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성학교 재학 중 조회 시간에 천황에게 해야 하는 경례를 여러 학생들 앞에서 거부하다 학교에서 추방되어 중동학교로 전학을 해야 했고, 보성학교 못지않게 민족의식이 강한 중동학교에서는 창씨개명을 반대하자 교사들도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퇴교조처를 했다.

 

배재학당으로 전학을 한 조연현은 재학 중에 동인지 를 만들고 조광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다.

등단이 쉬울 때가 아닌 그 시절에 그것도 고교 재학 중에 등한 작가는 충북 보은출신으로 요절한 오장환과 조연현 외는 찾아보기 어렵다.

 

혜화전문학교(동국대 전신) 재학 때는 조지훈과 함께 조선어로 시낭송회대회와 웅변대회 준비를 하면서 조선어로 하겠다고 고집하다 학교 측과 갈등을 빚었고 일제에 끌려가 유치장 생활을 한 후 학교를 떠나야 했다.

 

일제가 패망을 앞두고 마지막 발악을 할 시기 징병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끌려가면 대리전의 총알받이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확실한 직업이 있는 사람은 징집 면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194424세 때 고향으로 돌아와 창씨개명을 하고 함안면의 면서기가 된다.

 

조연현은 작은 키에 평생 몸무게가 38kg을 넘은 적이 없을 정도로 왜소했고 위장병과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것을 그가 수필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징집되면 전쟁터에 도착하기 전에 죽을 확률이 높았다. 조연현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면서기가 된 것을 욕하는데, 그렇다면 꼭 대리전에 나가 죽어서야 했단 말인가?

 

조연현이 면서기를 한 1944~5년 일제의 패망 직전 사회분위기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일제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놋그릇 같은 쇠붙이 공출을 강요했고, 겨울에는 성인 한 사람당 부과된 관솔 기름을 공출해야 했다.

 

주변에 소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십리 밖에까지 가서 온 산을 뒤져 관솔을 채취한 후 기름을 뽑아 할당량을 공출했다. 쇠붙이나 관솔 기름을 헌납하여 일본 항공대 가미카제를 도운 우리의 선조들을 용서받지 못할 친일파로 몰아야 하는가?

 

공출 중에는 처녀 공출이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닌가? 안 갔으면 될 텐데 왜 갔느냐 할 수 있는 문제인가? 지옥의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그중에는 일본군과 인간관계가 좀 좋았던 할머니는 친일이고, 일본군과 부딪치고 저항했던 할머니는 애국자로 따로 분류해야 할까?

 

조연현은 약 2년간 함안면 면서기를 하면서 6편의 글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중 4편은 친일성향이 있다고 김병걸과 김규동은 말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동양에의 향수>, <아세아부흥론 서설>이었는데,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미국과 일본이 전쟁 중 일 때, 동양의 문화가 미국이나 영국보다 더 우수하며 아세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하여 친일로 분류되었다.

 

당시 약한 국가를 무자비하게 정복하는 약육강식의 미국과 영국의 문화에 대한 비판이 더 컸다고 본다.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하면서 원주민 60만명 이상을 살해한 것과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만약 알면 그렇게 쉽게 매도하지는 못 할 것이다.

 

그리고 20대 청년의 글이 얼마만큼 일제에게 도움을 주었으며 우리 민족에게는 해를 끼쳤었을까? 5인 가족이 공출로 바친 관솔 기름 한 말보다 더 큰 도움을 주었을까?

 

일제 앞잡이가 되어 민족을 괴롭히고 독립군을 밀고하거나 고문하고 죽인 민족반역자들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다시 말해 불쌍한 생계형 친일들끼리 갈가리 찢어져 서로 손가락질하며 미워하고 싸워야만 나라가 바로 선다 말인가?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글을 쓰고 깊이 연구하여 논문을 작성해도 시간이 조금 흐르면 학설이나 주장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1945년 노예에서 해방이 되자 조연현은 서울로 가서 신문사 기자, 대학교수를 역임했고, 가장 권위 있는 문학잡지 <현대문학>의 주간으로 작고할 때까지 25년간 수백 명의 문인을 배출시키며 독재정권과도 정면으로 맞서기도 했다.

 

1965년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예술계가 된서리를 맞는 시발점이 되었던 남정현의 <분지(糞池)>와 그 후 첨예한 좌우익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던 조정래의 <태백산맥><현대문학>을 통해 발표 된 작품들이 아닌가? 편집 책임자였던 조연현의 신념과 배짱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우리는 현대사에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광복 직후에 인품이 아무리 고매하고 항일운동을 한 사람일지라도 누군가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그 사람 일제 때 친일했다하면 그날로 인생 종치는 시절이 있었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그 사람 빨갱이다 증언하면 다른 문제는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그런 잔재가 남아 있고 한 인간을 매장시킬 때 그런 살수를 쓰기도 한다. 옥에 있는 티만 부각시켜 반드시 깨어버리는 방법인 것이다.

 

함안문인협회에서 두 번의 이사회를 열어 시로 등단 한 사람의 작품과 출향작가의 작품을 합쳐 31편의 시를 엄선한 후 7월 중 아라길에 시판을 설치하자 많은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너무나 참담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일어났다.

 

여러 시판 속에 있는 조연현이 젊은 시절 일제의 수탈과 흉년으로 함안사람들이 겪은 배고픔을 읊은 시 <진달래>라는 시판을 뽑아버리겠다고 한다.

 

군북면 L선생이 필자에게 전화를 해 조연현선생의 친일을 언급하며 함안에 시판을 세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고, 통화 후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기사를 쓰기 위해 두 명의 지역신문 기자로부터 전화가 온 후 기사화되어 나왔다.

 

시판을 기획하고 설치한다고 몇 달 동안 고생한 군청 담당자는 여론이 시끄러워질까 두려워하며 제발 철거하자고 사정사정을 한다. 함안군청 공무원 몇 사람 정도는 한 손아귀에 잡고 흔든다는 말을 들었는데, 몸소 뼈저리게 체험해야 했다.

 

L선생은 전두환 정권 때 전교조 활동을 하다 교직에서 쫓겨 난 것으로 안다. 목숨을 던지며 일을 하는 사람이나 목숨 같은 직장을 걸고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마땅히 존경받아야 한다.

 

하지만, 병적이라 할 만큼 자기만이 옳고 정의라는 독선으로 본의는 아니겠지만, 함안의 문학발전에 큰 장해물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존경하는 L선생은 이제 실명을 걸고 앞으로 당당하게 나와 자기의 의견을 밝혀 주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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