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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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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5-3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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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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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녹음이 짙어지는 6월이 오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되새기게 된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호국(護國)이란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이고, 보훈(報勳)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고 공훈에 보답 한다는 뜻이다.

 

호국보훈의 달6월은 66현충일’, 625‘6,25전쟁’, 615일과 29일에 발생한 ‘1,2차 연평해전까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에서 지정한 달이다.

 

그만큼 6월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순국선열들의 희생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국가보훈기본법252항에 의하면 국가는 희생공헌자의 공훈과 나라사랑정신을 선양하고 보훈문화를 창달하기 위하여 매년 6월을 보훈의 달로 지정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보훈의 달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6월의 호국보훈의 달을 말한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 등을 기념하기 위해 하루를 기념일 또는, 국경일로 지정하는 경우는 있지만 한 달을 통째로 기념 또는 추모를 위해 법으로 제정한 경우는 유일하다.

 

6월을 상징하는 날은 625일이기는 하지만 앞서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 흘린 독립운동가의 희생도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과 자유의 근원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과 맞바꾸었던 조국의 영혼이 있었다면 1950년에는 힘겹게 되찾은 나라를 다시 잃을 수 없어 뜨거웠던 6월 여름 짧은 청춘을 바친 조국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누군가의 남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안위 대신 나라를 지키기 위한 헌신을 선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덤덤해지며 호국보훈의 의미가 점점 옅어지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호국보훈이라는 말들이 이제는 화석처럼 되어 의미없는 단어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또 그 고마움을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해방이후 70여 년 동안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 한다면 625 전쟁이라 할 수 있다.

 

1950625일 발발한 전쟁은 31개월 간 전국토가 초토화되는 전면전으로 현대사에서 가장 큰 전쟁이었다.

 

1953727일에 비로소 판문점에서 유엔군 사령관과 공산군(북한군과 중공군) 사령관 간에 휴전이 조인되었다.

 

625 전쟁은 수백만에 이르는 희생과 72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는 계기가 됐다.

 

국가기록원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군, 유엔군 전사자는 총 17만여 명에 달한다. 또한 부상자는 55만여 명에 이르며 4만여 명이 실종되거나 포로가 되었다.

 

민간인 피해는 더 크다. 사망자 24만여 명, 피학살자 12만여 명, 부상자 22만여 명, 피랍자 8만여 명, 행방불명 30만여 명으로 총 100만명이 넘는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

 

또한, 전 국토의 80%에 달하는 지역에서 전투를 벌여 국내의 거의 모든 곳에서 사회·경제 체제의 기반이 황폐화되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국군은 138,000여 명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123,000여 구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한 채 아직도 초연이 가득하던 조국의 산천에 묻혀있다.

 

국방부가 지난 2000년부터 유해 발굴을 시작해 시신 10,967구를 찾아냈지만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지난 514일 기준으로 164명에 불과하다.

 

유해 발굴 감식 단장인 박신한 대령은 당시 전사자의 기록과 사망 장소에 대한 기록이 없고 또한, 전쟁발발 70여년이 흘러 증언해줄 참전용사들이 사망하거나 고령으로 기억력이 쇠퇴해 신원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였음에도 유해조차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6.25 전쟁에 이어 6호국보훈의 달을 구성하는 사건은 1999615일 발생한 제1차 연평해전과 2002629일에 발발한 제2차 연평해전이다.

 

1차 연평해전은 북한 해군 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한국 해군에 선제공격을 감행하면서 발발했다.

 

대한민국 해군은 북한 경비정 1척을 격침시키고 5척을 대파하는 반면 우리 해군의 고속정은 경미한 손상을 입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이는 625전쟁 이후 최초의 남북 간 공식 교전이었다.

 

2차 연평해전도 호국보훈의 달을 구성하는 사건이다.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제2차 연평해전은 1차와는 달리, 6명 사망 및 19명 부상과 참수리급 고속정 357가 예인 중 침몰하는 등 국군의 피해도 상당했다.

 

최초로 공식 교전을 통한 전사자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광복 이후 맞이한 70여 년간의 현대사에서 발생한 3차례의 공식 교전이 모두 6월에 발발했다.

 

때문에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서 현대사적 특수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구성하는 세 사건은 아픈 역사인 동시에, 극복해야 할 역사이다.

 

이는 아픈 현대사의 일부로, 나라를 위해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며,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기리는 것은 지금의 평화와 안전을 누리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의무인 것이다.

 

6월로 넘어오며 여름의 초입에 들어섰다. 초여름 싱그러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6월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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