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함안(咸安)의 지명유래(地名由來)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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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8-30 20:32본문
함안(咸安)의 지명유래(地名由來) 1
함안뉴스는 함안의 옛 이름과 유래를 알아보고 독자여러분께 함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함안의 지명유래』를 연속 게재합니다. 먼저 함안군의 유래(由來)와 지세(地勢), 성씨(姓氏)들에 대한 연재로 시작합니다.
현재 지명들은 대부분 한자어로 바뀌어 지명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원 뜻이 현재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함안뉴스는 지명의 원래 뜻과 유래를 독자님들께 전달함으로써 우리 함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의도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재에는 아름다운 순 우리말 지명도 상당수 등장하게 되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군민여러분께 함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함안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에서 편집하고 함안문화원에서 발간한『함안의 지명유래 증보판』을 출처로 삼고 있음을 알려드리며, 소중한 자료를 편찬하신 함안문화원의 노고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함안군(咸安郡)
유래(由來)
함안(咸安)과 칠원(漆原)은 통폐합되기 이전(1906년)까지 별도의 군·현(郡縣)인 관계로 지명에 따른 유래와 변천과정을 달리한다.
상고시대(上古時代)에는 함안과 칠원은 다 같이 삼한(三韓) 중 변진(弁辰) 12국의 하나였다.
12국 중 칠원지방은 접도국(接塗國)이고 함안지방은 안야국(安邪國)이었다.
이후 가야시대(伽倻時代)가 열리면서 함안은 아라가야(阿羅伽倻)의 고토(古土)임을 삼국유사(三國遺事)나 조선사략(朝鮮史略)의 5가야조(五伽倻條)에 기술하고 있다.
지명으로서 함안은 아시랑국(阿尸郞國), 아나가야(阿那伽倻), 아라가야(阿羅伽耶), 함안(咸安)금라(金羅), 사라(沙羅:戴勝覽), 파산(巴山) 등으로 불리웠다.
또한, 칠원은 칠토(漆土), 칠제(漆堤), 칠원(漆原), 읍호(邑號)에 구성(龜城), 무릉(武陵)이었다고 함주지(咸州誌)와 칠원읍지(漆原邑誌)에 기록되어 있다.
접도국(接塗國), 안야국(安邪國), 가라(加羅) 등도 함안의 옛 지명이다.
함안이란 이름은 신라 경덕왕(景德王) 16년(757년)에 최초로 불리워졌고, 고려 성종(成宗) 14년(995년)에 함주(咸州)로 개칭되었다.
현종(顯宗) 9년(1018년)에 다시 함안으로 고쳐졌으며, 파산(巴山)은 여항면의 봉수대가 있는 산 이름과 동일한 것으로 함안조씨(咸安趙氏), 함안이씨(咸安李氏)가 한때 본관(本貫)으로 쓰기도 했다.
금라(金羅)는 공민왕(恭愍王) 22년(1373년)에 고을 사람 주영찬(周英贊: 함안주씨(咸安周氏)의 시조)의 딸이 명(明)나라에 들어가 궁인(宮人)이 되어 총애를 받음으로써 지군사(知郡事:郡守)로 승격되고 이때에 함안의 별호(別號)로 금라라 하였다.
칠원도 신라초기에는 칠토(漆土)이던 것을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칠제(漆堤)로 고쳐 의안군(義安君)의 영현(領縣)이 되고 고려 태조(太祖)23년(940년)에 비로소 칠원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도 군·현(郡縣)의 예속, 통폐합 등이 여러 번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년)의 경남 군·현을 보면 1목(牧), 3도호부(都護府), 7군(郡), 16현(縣) 중 함안은 7군에, 칠원은 16현에 포함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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